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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나의 첫 책 -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YONJAAN 2022. 3. 17. 16:34

어느 순간부턴가 책을 잘 읽지 않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지금보다 오히려 호기심과 시간이 많았어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책 읽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했다. 도서관에도 자주 가지 않았는데 코로나 때문인 것도 있지만 전공 공부에 지쳐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지난 2년간 개발 관련 책만 읽고 소설 책, 에세이같은 것은 거의 읽지 않았다. 이번에 우연히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기회가 생기면서 처음 빌린 책이 바로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이란 책이었다. 도서관에 가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이 책을 떠올린 것도 우연이었다.

 이 책은 한 1년전부터 읽고 싶어서 메모해둔 책이었다. 좋아하는 배우가 추천해준 책이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작가를 좋아한다거나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좋아하는 배우와 같은 책을 읽고 배우님이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만큼 이 책에 가자고 있던 마음이 가벼웠고 빌려온 첫 날 몇 장 읽다가 바로 덮어버렸다. 최근 들어 안 좋은 버릇이 생겼는데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등장인물의 태도나 생각이 내 입장에서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다. 일본에서 온 이 책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 첫 이야기였던 '모유의 숲'에는 모유를 할 수 있는 수유방, 여장 남자같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한국에는 수유를 전문으로 하는 공간, 하다못해 비슷한 행위를 하는 공간이 없었고 여장 남자도 흔히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알고보니 일본에도 '수유'목적의 수유방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왠지 거부감이 생겼으나 반납일이 하루 남은 시점에서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모유의 숲'은 아이를 잃고 큰 상처가 생긴 여자가 우연히 모유의 숲이란 수유방에서 일하게 되면서 수유란 행위를 통해 치유를 얻게 되고 상처를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아기도 아닌 다 큰 어른에게 수유한다는 행위가 대체 어떻게 상처 극복과 연관지어질 수 있는걸까 의문이 생겼다. 이런 건 상처 극복이 아니라 그저 불법적인 성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법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부정적으로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사쿠라라고 불리는 이 여인이 그 안에서 수유라는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에 공감하고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보며 이런 행위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모두 자신만의 아픔이 있고 때론 아픔이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위로를 얻기도 한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아픔도 조금은 치유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의 슬픔도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여긴 누가 더 슬픈지 재 보는 곳이 아니야.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와서 치유하고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고."

 

서클 오브 라이프

두번째 이야기는 어렸을 적 자신을 돌바주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도망쳐 나온 한 여자가 어렸을 적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돌보지 않았고 남자만 따라다니며 아이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도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도망나온 아이는 이모와 연락이 닿아 이모와 함께 지냈다. 그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고 직장도 있으며 믿을 수 있는 애인도 생겼다. 그럼에도 어렸을 때 당했던 성폭행의 기억 때문에 성과 관련된 행위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곳인 캐나다에는 갈수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캐나다로 출장을 가게되고 그 곳에서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고 어머니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내게 된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주인공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 것은 용서의 또 다른 형태같다고 느꼈다. 단편 소설인 만큼 주인공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굉장히 짧게 다뤄져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심리변화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서

* 사실 오로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색이 아니다. 눈으로 보면 흰색. 사진으로 찍으면 초록색으로 나오는 그저 그런 풍경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색은 정말 아주 가끔. 1년에 한번 볼 수 있을까말까 한 색인데 사진 작가들은 이 사진 한 장을 위해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오로라가 우리가 생각한 색이 아닐 수 있으나 이건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모른다.

마지막 이야기는 몽골에서 슬픔을 극복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소꿉친구의 죽음으로 고향에 가게 된 여자는 그곳에서 또 다른 소꿉친구를 만난다. 그 소꿉친구는 자신의 고향이라며 여자를 몽골로 초대한다. 여자는 몽골에 가서 소꿉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몽골의 문화에 대해 알아간다. 처음에는 유목민의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불편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여자는 자신이 처음에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스스로 고쳐 사용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사람들, 그리고 서로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느꼈던 회의같은 감정에 있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된다. 우연히 가게 된 곳에서 여자는 치유받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지막에 두 소꿉친구는 사귀게 되는데 둘이 서로 자신의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에서 남자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 초원에 누워있으면 마치 공룡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처음에는 남자가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건가 했지만 그건 남자아이가 이 초원과 교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소리였을 것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넓은 세계에 스스로를 던지면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싫어도 깨닫게 되지. 그럼 더 성장할 수 있어. 자신의 한계를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야.", "하지만 살아있다면 몇 번이고 기회가 와. 살아 있다면."

 

힘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이 진짜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일어나 그럴 때가 아니야.' 하는 어쩌면 독촉이었을지도 모를 그런 말들이었다. 나도 '힘내'라는 말을 정말 싫어했다. 힘을 낼 수 없는 사람에게 힘내라니, 이건 강요 아닌가? 그러다가 정말 힘든 일이 있었을 때 '힘내'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소녀시대의 꽤 오래된 노래였는데 이 가사 중에 힘을 내라고 말해줄래 지친 날 감싸안고 날 일으켜줄래'하는 부분이 있는데 듣는 순간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며 힘든 순간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책에서 치유를 받게 되었다. 배우님이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한번에 끝까지 읽어서 사실 머릿속에 많은 내용이 담기진 않았다. 한번 읽게 되면 멈출 수 없는 책이었다. 이상하게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몽골로 여행가서 별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호텔에서 남자친구와 전화로 여러 말을 주고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 내가 들어가서 동시에 치유받는 기분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오가와 이토라는 작가님을 꼭 기억하고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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